정선임 작가
나는 건너편에 있었다. 도보 위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있는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건널 이유는 없었다. 출근길이었고 직장은 반대 방향이었으니까. 게다가 10분 안에 도착해 출근 지문을 인식하지 않으면 지각이었다. 길을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고작 3분여 정도지만 그 때문에 하루 전체가 꼬일지도 모른다. 뒤돌아서는데 그럴 때면 뒤를 돌아 길을 건너라는 속삭임 같은 것이 자꾸만 들린다. 망설이다 결국에는 신호를 기다린다. 다급하게 길을 건너 발자국으로 더럽혀지고 너덜너덜해진 A4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뒤돌아서 다시 빨리 뛰어야 하는데 나는 종이를 들고 한동안 멈춘다.
누군가의 사망진단서였다. 그는 근처 요양병원에서 두 달 전쯤 죽음을 맞았다. 일흔아홉의 여성이었고 암 수술을 받았고 신부전증을 앓았다. 4월의 셋째 주 목요일 저녁 7시 15분에 죽었다. 나는 그 시각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있거나 야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벚꽃이 다 졌구나, 하고 한숨을 쉬거나 유튜브나 쇼츠를 보며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거나. 그 여성에게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받아온 사망진단서를 흘려 버린 그 사람. 이것을 받아 들고 그 사람은 울었을까? 집에 돌아가 어디선가 흘린 걸 알아채고 다시 사망진단서를 받아야 하는지 병원에 문의했을까. 그것을 도로 길 위에 놔둘 수 없어서 나는 종이를 들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가족이 반으로 줄어들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연달아 겪은 죽음들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도 나는 바빴다. 무덤덤하게 죽음을 흘려보내는 나를 보면서 단단히 어딘가 고장이 난 거라고 여겼다. 멈췄다. 멈춰야 한다. 그때도 들었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길을 건너게 했던 속삭임을. 그런 속삭임이 소설을 쓰게 했다.
첫 소설은 책상에 주인공이 머리를 부딪치며 잠에서 깨어나는 그것으로 시작됐다. 소설 속에 등장한 책상은 실제로 내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붉은빛이 도는 무거운 느낌의 갈색 톤. 철제 책상이라 겨울에는 찬 기운이 올라와 손이 시려 도톰한 천을 깔아야 한다. 아빠가 미군 부대에서 제대하던 날, 책상을 기념으로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빠의 말을 빌자면 미제라 튼튼하다. 책상이 내 소유가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삼촌들이 썼다가, 오빠가 결혼하기 전까지 사용했고, 그 이후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다가 십 년 전에야 내 차지가 되었다. 책상은 무겁고 크다. 어떻게 들키지 않고 옮길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왜 하필 책상이었을까. 이제 알 수 없다. 책상이 궁금해진 건 아빠가 죽은 다음이니까. 아빠에게 물어볼 수 없어 결국 상상해낼 수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야구를 해놓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길을 택했던 사람. 그렇게 40년을 출근했던 사람. 화도 많았지만 겁도 많았던 사람. 그가 제대하던 날을 상상했다. 책상을 가져가기로 마음먹고 계획을 짰을 미군 군복을 입은 키가 큰 청년을. 혼자서는 들 수 없었던 책상을 도와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정작 본인은 앉지도 않았으면서 왜 책상이었을까. 직접 물어봤다 해도 그중에 가장 값이 나가 보였다는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분명 내 상상에는 한계가 있고 내가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고 변형된다. 내가 쓰는 것은 소설이고 픽션, 그러니까 결국 거짓말인 셈인데 나는 왜 이렇게 고민하는 걸까, 쓰는 내내 의심했다.
소설은 완성했지만, 엉망이었고, 그 소설을 쓴 뒤에 여러 편의 습작을 완성했고 데뷔한 이후에도 내가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 몰라 한동안 헤매야 했다. 그러다 어렴풋이 깨닫게 된 건 첫 소설집 출간을 준비하던 즈음,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였다.
“글쓰기는, 구원하고 죽음을 극복하는 데 이용됩니다. 그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말입니다. 그들을 위해 증언하면서, 그들을 영원하게 만들면서, 그들을 비기억 밖으로 끌어내면서 말입니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러한 후회를 어떻게든 되돌리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시간을, 지상에 아직 살아있다면 그 존재가 누렸을 삶을 복원하려 애쓰는 일. 어쩌면 죽은 고양이 털을 주워 담는 것처럼 쓸모없고, 실패가 예정된 일이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이제 세상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나는 알게 된다. 내가 알았다고 생각했던 아빠에 대해 실은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니 알려 하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을. 그렇게 거짓에 거짓을 더하는 과정에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랑과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 소설 쓰기라는 것을.
최근에 출간 예정인 앤솔로지 소설의 코멘터리를 준비하다가 함께 작업했던 작가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는 기억을 잊는 것은 어려워도 잊지 않는 것은 선택이나 결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 살 가까이 된 외할머니가 점차 기억을 하나씩 잃기도 하고 엉뚱하게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물어지는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선택이나 결심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나는 서운해진다. 슬퍼진다. 좋은 기억들은 다 잊고 나쁜 기억만 간직하고 가실까 봐 두렵다.
지각 1분 전에 지문을 인식하는 데 성공한 나는 그것을 사무실 파쇄기에 넣었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을 수도 없고, 간직할 수도 없기에.
갈려 나가는 종이를 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길 위에서 이리저리 채이고 밟히는 죽음들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기도이자 투쟁일지도 모르겠다. 무뎌지지 않겠다는 안간힘이자 시간의 흐름 앞에서 무참하게 스러지는 인간의 육체에 갇히지 않겠다는 저항. 아무것도 잊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나를 멈추는 속삭임을 향해.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분에 「귓속말」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202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2023년 단편소설 「요카타」로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동화 『그 아이가 절대 궁금하지 않아』 , 공저로 『여름기담 : 순한맛』, 『당신을 기대하는 방』,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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