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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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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시
손의 여행

빛의 이름 
새파란 물 
흔들리는 절망 

노래를 부르면 생겨나는 날개

초록을 등에 업고 굴속을 기어갈 때
선명해지는 추락의 장면

손목을 움켜쥐면 느껴지는 맥박

파랗다
파랗다

차라는 거 너무 이상하지 어떻게 앉아만 있었는데 도착해버리는 걸까 
너의 커다란 두 손을 잘라 한쪽씩 주머니에 넣고 여행을 떠나던 날

갑자기 네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얼굴을 찌푸릴 때

뾰족한 검지가 내 볼을 푹 찌르며

물을 흔들면 열리는 절망을 
다 보는 게 우리의 임무야

그러면 온 세계의 빛이 동시에 쏟아지고

멋대로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널 보며
그럼 난 어디서 시작할까
혼자 속으로 물으며

계속해서 엑셀을 밟으며
더 이상 그리운 것이 없을 때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풍경을 찢으며 폭소를 터뜨릴 때

네 손이 거쳐 온 수많은 날들을 멋대로 상상해보는 일

환하게 불이 켜진 새벽의 창을 올려다보다
눈물을 닦아내던 밤과 
한아름 꽃을 안고 종로3가를 걷던 낮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다
작은 입술을 엄지로 살짝 눌러보던 
주말 아침

그런 장면들을 질투하다가

이토록 빛나는 것이 많은데
우리는 어째서 떠나온 걸까

파랗고
파란

손끝의 리듬으로
부풀어 오르는 속력 속에서
나는

결국
결국이라는 말을 
삼키고

창을 치고 흩어지는 눈발을 가만히 바라보며

터널을 건널 때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커다란 동물의 뱃속을 건너가는 것 같다
삼켜졌다 뱉어지기

너는 내 머리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고
나는 어느새 옛날처럼 말해

어깨 좀 주물러 줄래?
손잡아 줄래?

그러면 생겨나는

파랑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것처럼
놓여 있는 
대시보드 위 두 손

갑자기 네가 핸들을 틀면
저 다리 아래로 추락하면

우린 언제쯤 발견될까?

속으로만
속으로만
물을 때

낮게 날아가는 검은 새

너를 남겨두고 혼자 강가에 설 때

빛보다 아름다운 물이 또 있을까
자꾸만 물을 때

파랑
파랑

흔들리는 눈 속의 나무들
두근대는 손끝이 길어질 때

우리가 함께 보낸 몇 번의 여름과 겨울
봄날의 색들을 떠올릴 때

빛보다 아름다운 창이 또 있을까
자꾸만 물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면 가만히 거울을 봐
거울 속의 두 눈을 봐

검은 눈이 가진 어둠을

그걸 착실히 적어 내려가는 두 손을

도착하게 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남겨진 너는 뭘 하고 있을까

숨과 불
불과 숨

내가 생각한 결말을 알려줄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면 가만히 거울을 봐
거울 속의 두 눈을 봐

검은 눈이 가진 어둠을

그걸 착실히 적어 내려가는 두 손을

도착하게 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남겨진 너는 뭘 하고 있을까

숨과 불
불과 숨

내가 생각한 결말을 알려줄까

밤바다에서 목을 조르는 두 손
풀썩 쓰러지는 그림자
그림자를 타고 오르는 물거품

삶은 이토록
단정하고
깨끗한

한 장의 이불 같은 것이었다고

중얼거리며
가라앉을 수 있다면

그러나 우리는 달린다 저 멀리 산들이 겹쳐 보이는 곳까지 
저걸 다 넘어가면

그땐 무엇이 되어 있을까 우리

물으며
물으며

돌려받지 못할 질문만 무성해지는 길 위에서 

너의 두 눈이 떠오르지 않아 
더 세게 손을 쥐어보며
손과 시

잘린 손의 이미지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그건 어쩌면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신체의 개별적 움직임에 대한 상상 때문일까. 손은 참 이상한 것이다. 손은 밀칠 수 있고 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우리가 하려는 일의 대부분을 수행할 때 필수적인 것이다. 손, 손, 손…… 하고 중얼거리다보면 어쩐지 손은 내가 본 적도 없는 멀리 있는 이상한 사물 같다. 시에는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잘린 손보다 손을 잃은 채 남겨진 몸을 더 오래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홀로 남겨진 몸은 무얼하며 살아갈까. 그런 쓸쓸함을 생각을 하며 그 몸에 나를 대입했는지도. 


달리는 일은 이상하다. 바람을 찢고 나아간다는 것. 첫 구절에 쓴 것처럼. 나는 앉아만 있었는데 도착한다는 게 너무 이상해서 어리둥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이동의 감각을 다른 사람들도 떠올릴까. 궁금했다. 엑셀을 밟으면 무성해지는 속력. 그 속력 속에서 지나가며 뭉개지는 풍경. 그런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생각들을 곱씹고 있으면 생각은 속력에 맞춰 무럭무럭 커져갔다. 그것들을 나 대신 기록할 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물론 시 속의 손은 아무 것도 받아 적지 않지만).


사랑은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사랑이란 뭘까. 나는 분명 사랑을 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볼 수도 없는 것을 믿는다는 건 이상하지. 그래. 이 시는 “손의 여행”이라기보다는 “손을 납치”하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런 파괴적인 사랑의 일부분을, 폭력을, 사랑의 틈을 자꾸만 노려보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사랑을 너무나 아름답게만 포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자꾸만 슬픔을 향해 기울어지는 고개를 주체하지 못하고 푹, 꺾여버리는 와중에 생겨나는 것. 사랑이란 이름 아래 자라나는 두 개의 가지. 두 개의 얼굴. 사랑해. 파랗게. 사랑해.


자꾸만 슬픈 쪽만을 바라보려는 나쁜 버릇. 그런 버릇이 나를 오래 다치게 했는데도, 왜 나는 그걸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걸까. 검은 물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몸처럼. 그 몸이 내 몸이자 남겨진 너의 몸으로 함께 포개져 보이기를 바랐다고 하면 욕심일까. 해변에 남겨진 두 손은 그때부터 진짜 여행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시는 여행의 내용이라기보다 여행 직전까지의 일들을 적어놓은 건지도 모른다. 손은 이제 무얼 쥘까. 손은 이제 어디로 갈까. 혹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가만히 모래를 헤치며 내내 남은 이야기를 적을까.


용기가 없을 때마다 손을 내려다본다. 손을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마치 남의 것처럼 낯설다. 몸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시야를 가지고 싶은데, 나는 조각조각내어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다. 작은 손, 커다란 눈, 그런 것들을 내 몸의 일부로 생각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내가 저것을 움켜쥐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내 손이 그것을 수행하는 일이 내겐 왜 이리 신비롭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 손을 본다. 주먹을 꽉 쥐어본다. 다시 펼친다. 그러다 보면 삶의 실감이 조금씩 돌아올 것만 같은 순간도 있어. 그래서 자꾸만 손을 본다. 


시를 쓰다보면 생각한 대로 시가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는 늘 의외의 장르라서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그게 좋아서 시를 쓴다. 천 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게 다 점처럼 작아질 거야. 이 슬픔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야. 그런 믿음으로. 심상한 마음으로. 우주를 생각하고 심해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 시를 쓰다가 문득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거울을 본다. 나의 차가운 두 눈을 본다. 그 눈이 목격한 것을 다 쓰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나는 언제까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매일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는 질문들. 바래고 낡은 그러나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  


파랗고 파란, 그건 손이 가진 색이기도 하고 바다의 색이기도 하다. 바다가 하나의 커다란 손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꾸만 움켜쥐려고 하는데 다 놓쳐버리는 슬픔을. 커다란 손이 뒤척일 때마다 뒤집히는 물속의 모든 것들. 파랗게 파랗게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꽉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펼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느껴지는 공허를. 그런 슬픔의 장르를 바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젠 절규나 외침이 아닌 침묵에 가까운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다. 모래사장에 적은 글자들이 쉽게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 때, 그 언어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들이 적은 서로의 이름과 하트 같은 것들이 바다 깊은 곳 어딘가에 쌓여 언어의 정원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심해에 가득한 이름들 사이를,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고 싶다. 그런 결말을 생각했지만 적지는 않았다. 언젠가 다른 시에 적어볼 수도 있겠다.


김덕희 소설가 소개
백은선시인

글. 백은선


시인.

2012년 『문학과 사회』신인상

2016년 시집『가능세계』

2019년 시집『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2021년 산문집『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2021년 시집『도움받는 기분』

2023년 시집『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2025년 시집『비신비』

저서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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