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손의 이미지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그건 어쩌면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신체의 개별적 움직임에 대한 상상 때문일까. 손은 참 이상한 것이다. 손은 밀칠 수 있고 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우리가 하려는 일의 대부분을 수행할 때 필수적인 것이다. 손, 손, 손…… 하고 중얼거리다보면 어쩐지 손은 내가 본 적도 없는 멀리 있는 이상한 사물 같다. 시에는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잘린 손보다 손을 잃은 채 남겨진 몸을 더 오래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홀로 남겨진 몸은 무얼하며 살아갈까. 그런 쓸쓸함을 생각을 하며 그 몸에 나를 대입했는지도.
달리는 일은 이상하다. 바람을 찢고 나아간다는 것. 첫 구절에 쓴 것처럼. 나는 앉아만 있었는데 도착한다는 게 너무 이상해서 어리둥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이동의 감각을 다른 사람들도 떠올릴까. 궁금했다. 엑셀을 밟으면 무성해지는 속력. 그 속력 속에서 지나가며 뭉개지는 풍경. 그런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생각들을 곱씹고 있으면 생각은 속력에 맞춰 무럭무럭 커져갔다. 그것들을 나 대신 기록할 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물론 시 속의 손은 아무 것도 받아 적지 않지만).
사랑은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사랑이란 뭘까. 나는 분명 사랑을 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볼 수도 없는 것을 믿는다는 건 이상하지. 그래. 이 시는 “손의 여행”이라기보다는 “손을 납치”하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런 파괴적인 사랑의 일부분을, 폭력을, 사랑의 틈을 자꾸만 노려보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사랑을 너무나 아름답게만 포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자꾸만 슬픔을 향해 기울어지는 고개를 주체하지 못하고 푹, 꺾여버리는 와중에 생겨나는 것. 사랑이란 이름 아래 자라나는 두 개의 가지. 두 개의 얼굴. 사랑해. 파랗게. 사랑해.
자꾸만 슬픈 쪽만을 바라보려는 나쁜 버릇. 그런 버릇이 나를 오래 다치게 했는데도, 왜 나는 그걸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걸까. 검은 물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몸처럼. 그 몸이 내 몸이자 남겨진 너의 몸으로 함께 포개져 보이기를 바랐다고 하면 욕심일까. 해변에 남겨진 두 손은 그때부터 진짜 여행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시는 여행의 내용이라기보다 여행 직전까지의 일들을 적어놓은 건지도 모른다. 손은 이제 무얼 쥘까. 손은 이제 어디로 갈까. 혹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가만히 모래를 헤치며 내내 남은 이야기를 적을까.
용기가 없을 때마다 손을 내려다본다. 손을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마치 남의 것처럼 낯설다. 몸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시야를 가지고 싶은데, 나는 조각조각내어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다. 작은 손, 커다란 눈, 그런 것들을 내 몸의 일부로 생각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내가 저것을 움켜쥐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내 손이 그것을 수행하는 일이 내겐 왜 이리 신비롭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 손을 본다. 주먹을 꽉 쥐어본다. 다시 펼친다. 그러다 보면 삶의 실감이 조금씩 돌아올 것만 같은 순간도 있어. 그래서 자꾸만 손을 본다.
시를 쓰다보면 생각한 대로 시가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는 늘 의외의 장르라서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그게 좋아서 시를 쓴다. 천 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게 다 점처럼 작아질 거야. 이 슬픔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야. 그런 믿음으로. 심상한 마음으로. 우주를 생각하고 심해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 시를 쓰다가 문득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거울을 본다. 나의 차가운 두 눈을 본다. 그 눈이 목격한 것을 다 쓰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나는 언제까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매일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는 질문들. 바래고 낡은 그러나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
파랗고 파란, 그건 손이 가진 색이기도 하고 바다의 색이기도 하다. 바다가 하나의 커다란 손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꾸만 움켜쥐려고 하는데 다 놓쳐버리는 슬픔을. 커다란 손이 뒤척일 때마다 뒤집히는 물속의 모든 것들. 파랗게 파랗게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꽉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펼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느껴지는 공허를. 그런 슬픔의 장르를 바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젠 절규나 외침이 아닌 침묵에 가까운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다. 모래사장에 적은 글자들이 쉽게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 때, 그 언어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들이 적은 서로의 이름과 하트 같은 것들이 바다 깊은 곳 어딘가에 쌓여 언어의 정원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심해에 가득한 이름들 사이를,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고 싶다. 그런 결말을 생각했지만 적지는 않았다. 언젠가 다른 시에 적어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