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유해함이 안치되어 있는 어두운 콘솔레이션홀에 들어서면 네 벽면의 상반부 샤막에 어슴푸레한 영상, <몽유도원도_the Journey>의 세계가 펼쳐진다.2) 도입부에 빠르게 지나가는 스태인드글래스 창과 장미창, 그리고 고딕 아치는 실재 공간이 성소임을 언급한다. 곧이어 바다 위에 수직으로 서 있는 기암괴석 사이로 해가 천천히 떠오르다 점점 멀어지며 이리저리 부유하다 화면은 광활한 동굴 안의 거대한 암석의 역동적인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다시 동굴 밖인 듯 작은 섬들 주변에 잔잔한 파도들이 일고 있다. 영상의 불이 꺼진 듯 화면은 잠시 검은색으로 정지되었다가 순간 네 벽은 쏟아지는 물들로 가득 차고 하얀 아치들이 들어서며 성소에 장관이 펼쳐진다. 아치가 사라지면서 다시 4면을 가득 채운 부서진 물은 흡사 천계(天界)의 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사선으로 흘러내리다 다시 풍랑으로 바뀌고 거대한 추상표현주의 화폭으로 연출된다. 이후 우주는 다시 평정을 찾은 듯 수평의 잔잔한 물결이 일다가 밑에서 올라오는 지면에 밀리듯 물안개와 빛으로 증발된다.
몽유도원도1_AHA 콜렉티브
조선회화사에서 작품이 제작된 배경과 작가(안견), 연도(1447년)가 모두 기록된 작품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지역적 정체성, 민족문화의 부흥이라는 과제가 한국 미술계에 인식되면서, <몽유도원도>는 전통미술의 상징으로 동양화는 물론이고 서양화, 설치미술에서도 주제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도화원(도원)은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까지 동양적 유토피아의 전형이 되었다. 실재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꿈속의 이상향인 것이다. 깊은 산턱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가의 좁은 동굴 입구는 자궁을 상징하기도 하여 도화원은 낙원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샛별, 박주애, 정혜리, 최지원으로 구성된 AHA 콜렉티브는 <몽유도원도_The Journey>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념적 이상성에 대한 생경한 경험을 다룬다. <몽유도원도_the Journey>는 안평대군의 꿈속 세계를 그린 몽유도원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작품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봉우리들은 이상으로 향하는 여정의 연속되는 경계의 문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몽유도원도_the Journey>의 두 가지 서사는 THE CAVE, REBORN이다. ”
몽유도원도2_AHA 콜렉티브
이렇듯 AHA 콜렉티브의 작품은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다음 장면은 동굴 내부를 그린 복숭아꽃이 만발한 전통 산수화가 아니라 수직으로 쏟아지는 물을 배경으로 고대 서양 건축의 흰색 아치로 가득 채워진다. 물은 정화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실재 성소를 점령한 4벽의 물세례는 초월, 구원(redemption), 재탄생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상향을 찾아 나서는 꿈이나 의식의 흐름처럼 화면은 대각선, 수직, 수평방향으로 천천히, 빠르게 움직이며 정(靜)과 동(動)을 반복한다. 전통적 이상향의 주제는 기독교적 구원 개념과 교차하면서 정화, 재탄생의 드라마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냉전 종식의 기점으로 일컬어지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한국 미술계는 세계 미술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또한 인터넷망으로 전 지구가 연결된 현실에서 현대적 동화(同化)와 지역적 전통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미술계의 관건이다. 특히 전통 분야인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들에게는 동양화의 현대화가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 4명으로 이루어진 AHA 콜렉티브는 미디어 작업과 회화적 표현, 동서양의 기술, 종교, 철학을 조화시키면서 전통의 현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전시의 제목 <Up-Down Counter>는 “양방향 계수기라는 전자공학 용어를 사용하여 상반된 두 방향성, 즉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개념을 담고 있다”라고 AHA 콜렉티브는 설명한다.
몽유도원도4_AHA 콜렉티브
1)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미술사 교수로 재직했으며,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