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웅성웅성 자리를 잡고 안내 방송이 나온 후, 흐릿하게 남아있던 공간이 암흑으로 변한다. 유한의 공간이 무한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리곤 음악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공간에 반사되어 울리는 음악과 진한 어둠으로 내 몸은 우주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이제 나는 타임머신을 탄 것이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으로 이동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내 몸을 감싼다. 이 순간, 들려오는 음악은 집에서 작은 스피커로 듣는 것, 또는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순간의 긴장감, 이 순간의 신비로움, 이 순간의 황홀함이 나를 극장으로 이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조금씩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그곳엔 처절한 삶이 기다릴 때도 있고, 치열한 논쟁이 기다릴 때도 있다. 때론 느리고 작은 삶이, 돌 틈 사이 보잘것없는 잡초처럼 “이런 삶도 있는데..” 라고 아주 작은 미소로 수줍게 기다릴 때도 있다. 물론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모호하여 답답한 공연도 있다. 너무 천재적이거나 창작자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어, 대화가 쉽지 않은 공연도 있다. 그래도 그 공간에 앉아 있는 것이 편안하고 좋다. 사람들과 함께 앉아 창작자의 의도를 따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함께 공연을 본 사람들과 방금 전,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극단초인 사진
일 년에 120편에서 150편 정도의 공연을 본다. 좌석이 상대적으로 편한 공공 극장보다 조금은 불편한 소극장에서의 관람이 대부분이다. 좁은 소극장에 앉아서 80분에서 120분 사이의 공연들을 보다 보면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땐 무릎이 뻑적지근함을 느낀다.
그렇게 공연을 많이 보면 힘들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면 못한다. 좋으니까 하는 것이다. 공연이 좋으니까. 공연은 볼수록 재밌다. 같은 공연도 두 번 볼 때, 그리고 세 번 볼 때 더 재밌다. 못 봤던 것들, 놓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재차 관람을 하면서 다른 관점으로 공연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재미없는 공연도 있다. 내 취향이 아닌 경우도 있다. 완성도가 낮은 경우도 있다. 그래도 본다. 보는 것이 즐겁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극장에 가는 것, 그리고 극장에 앉아 있는 것, 암전이 되고, 오프닝 음악이 공간을 울리고, 인물이 등장하고, 배우들이 창조한 인물을 보고, 그들의 주장을 듣고, 조명과 무대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미지를 감상하며, 때론 흠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공연장에 가는 것이 습관, 그러니까 문화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유명한 공연이 있어서,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이라서 등의 이유도 좋지만 매일 먹는 밥과 김치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어줘야 하는 순댓국, 또는 설렁탕처럼, 커피처럼, 치맥처럼, 숨 쉬는 공기처럼, 주기적으로 극장을 찾는 것이 삶의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한 욕심일까?
공연을 통해 창작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을 접하는 것이 바로 공연의 매력이다. 그게 대화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자칫 자화자찬과 상호 위안을 통해 극단적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흥분하지 않고, 상대를 흥분시키지 않고 지속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면서 동시에 스릴 넘치고 재밌는 일이다. 물론 중간에 내가 흥분하거나 상대방이 흥분하여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계속 시도해 본다. 삶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공연을 통해서 나누는 대화, 공연을 본 후에 나누는 대화는 특히 즐겁다.
25서울연극제대상_관저의100시간
저는 서울 연극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서울연극협회 회장입니다. 연극인들의 바람, 필요한 정책을 정부에 전달하고 요구하고, 우리 연극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예술가들이 좀 더 안전하게, 그들의 작업이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그들의 창작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고민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는지를, 쉽게 말해 우리가 왜 극장에 가야 하고 극장에 왜 예술가들이 상주하여야 하는지, 왜 동네 극장에서 다양한 공연이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알리고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과 없이 허공에 대고 소리치고 있는 느낌, 때론 벽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고 느낌에 외롭고 절망에 빠질 때도 많습니다. 아직 지치진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문화강국, k-culture, 한류라는 단어가 중요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한류의 쾌거와 상반된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예술가들이 너무도 많은 현실이 몹시 안타깝습니다.
진짜 대한민국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이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문화강국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미래연극제-포스터
現 서울연극협회 회장
現 극단 초인 대표
작품
기차, 특급호텔, 선녀와나무꾼, 1인극 멕베드, 스프레이 외
수상
2019 Edinburgh Fringe Festival Asian Arts Awards
Best Directer, Best Technical Production 수상
(스프레이/각색 연출)
2018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출가상 수상
2012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 연출상 <사고 / 원작 뒤렌마트>
2008 광주평화연극제 대상 (평화상) <선녀와 나무꾼 / 원작 박정의>
2006 고마나루 향토연극제 연출상 <선녀와 나무꾼 / 원작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 https://stheat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