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윗세대만 해도 예술가는 ‘밥 빌어먹기 어려운’ 직업군이었다. 나의 세대에서는 정치 민주화에 이어 문화복지의 공론이 형성되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예술가로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여러 면에서 어떤 퇴행을 경험하게 되면서, 솔직히 예술가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퇴행이 감지되는 곳은 사회 문화 전반이다. 전문적이진 않지만 직관이 발달되어 있는 나의 감각으로 마구 던져보자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온라인과 AI로 소통하는 감각이 기존 현장성의 감각(몸, 사물, 공간 등의 육체적 물리적 온 감각들)을 중시하는 (내가 속해 있는) 공연예술과 섞이지 못하는 점.
둘째, 공공의 문화예술정책이 전자의 감각을 응원하고 지원하고 있다는 점.
셋째, 문화예술 생태계를 공공이 독점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남발하고 혹은 정리하면서 관이 주도하는 공모의 극심한 경쟁 없이는 생태계에 편입할 수 없다는 점.
넷째, 민간 예술 생태계가 공공의 정책에 대응할 만한 자생성을 완전 잃어버렸다는 점.
다섯째, 이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대전환되는 이 세계의 화면 속 얼굴을 닮았다는 점.
여섯째, 화면 속 이 세계의 얼굴은 새로운 기술과학과 미래 소통의 참신함을 앞세운 또 다른 자본과 권력의 욕망이라는 것,
일곱째, 자기 과시와 돈벌이의 통로인 유튜브 등으로 달궈진 개개인의 욕망이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
여덟째, 이 거대한 것들 앞에서 예술은 마치 서랍장에 숨겨진 끄적거린 일기장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거대 담론과 소통의 밖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
아홉째, 그래서 도대체 지금의 문제가 무엇인지 누가 누구와 소통하고 공론할 수 있겠냐는 회의감.
열번째...
열거는 끝이 없다.
끝없는 누적되는 불만은 사실 그 해결책이 안 보인다는 캄캄한 불안 때문이다. 공론의 장은 어디로 갔는가. 현장의 예술가들과 얼굴 한번 스치지 않고 모든 행정이 진행되는 예술행정 속에서 무슨 소통과 토론을 기대하겠는가.
불만과 회의는 여기까지만 하자. (좀 더 하면 배설이 될 수도 있으리...) 이제부터는 서랍장의 일기장을 꺼내 들고 큰 소리로 외치는 예술가들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우주축제’(‘우리가 주인인 축제’의 줄인 말)는 민간의 공연예술가들이(민간 예술가들이 만든 한국거리예술창작센터와 거리무용단체 리타이틀을 중심으로) 2024년 7월에 민간의 ‘자생적 예술생태계’를 회복하고자 자발적으로 만든 축제이다. 돈 하나 안 들이고(당연히 수입이 없으니 지출도 제로이다) 두 달에 한 번씩 격월간 우주축제를 하면서 평균 여섯 작품의 작품들을 발표해 나갔다. 매번 참여한 관객과 전문가들의 집중적인 합평회를 거치면서 작품들은 발전하였고, 올 2025년 7월, 6회의 격월간 축제를 거친 작품들 중 9편이 제1회 연간 우주축제에서 발표되었다(장소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제1회 연간 우주축제 현장
축제는 오후 1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끝이 났고, 참여한 100여 명의 관객과 참여 예술가들이 포럼 ‘우리가 주인인 자생적 예술 생태계를 위하여’와 작품의 합평회, 케이터링으로 준비한 식사와 간식, 파티를 즐겼다. 축제의 기획, 홍보, 운영, 아카이빙, 케이터링... 모든 영역을 예술가들이 함께 준비하고 운영했다.(물론 재정 제로를 기반으로)
처음엔 ‘이게 정말 될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축제를 1년을 운영하고 나서, ‘아! 이게 되는구나’하게 되었다. 이게 되는 이유가 뭘까? 사실 그 이유를 살피고 이해하고 그것에 적확하게 대답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생적 생태계로서의 축제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축제의 주최자인 나와 동료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축제에 ‘작가주의적 작품이어야 한다’라는 단서를 붙였다. 작품은 다 작가주의적이지 않는냐 하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공연예술계 특히 거리예술계의 동향을 보면, 지자체나 지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예술축제나 행사들은 ‘시민이 즐길’ 작품들을 요구한다. 예술은 즐거운 감각뿐 아니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사유의 역할을 한다. 문제는 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의 가벼운 입맛에 예술축제의 품격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시민들 또한 깊이 있는 예술을 즐길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작가주의 작품을 살리는 길은 예술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길이면서 동시에 향유자인 관객의 기회도 지키는 길이다. 기존의 축제들에서 소외된 작가주의적 작품들이 우주축제의 문을 두드렸다. 우주축제는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만드는 축제’라는 모토를 걸고 작품의 실험, 축제의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예술가로 살기, 정말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진실을 감각으로 말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숨기고 무감각하게 사느니, 온 감각을 깨워 풍요롭고 진실하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상훈 지휘자 소개
글. 이철성
시인이며 공연예술가인 이철성은 시와 시각예술과 공연을 융합한 비주얼 퍼포먼스를 만든다. ‘비주얼씨어터 꽃’, ‘체험예술공간 꽃밭’, ‘한국거리예술창작센터’, ‘우주축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불문과와 동대학원에서 시를, The School of Visual Theater(이스라엘)에서 비주얼 퍼포먼스를 공부하였다.
유럽 최대의 공연예술축제인 프랑스 샬롱 거리예술축제, 스페인 피라타레가 등에 공식초청되며 국제적으로 실험예술축제와 거리극축제에서 작품활동을 해왔고, 세계인형극총회 ‘탁월한 시각연출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40개국 이상의 오지를 여행하며 시와 산문들을 쓰고 있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