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아시안아트비엔날레는 “산과 바다를 건너온 낯선 이들(The Strangers from beyond the Mountain and Sea)”이라는 시적인 제목으로 기획되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호 추니엔(Ho Tzu Nyen)과 대만의 자웨이 후(Cha-we Wu)가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역사적 이동과 문화적 마주침의 흔적을 추적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지역적 서사나 민족적 기원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낯선 존재가 우리를 어떻게 변형시키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낯선 존재는 영혼과 신뿐만 아니라 주술사, 외국 상인, 이민자, 소수 민족, 식민지 주민, 밀수업자, 파르티잔, 스파이, 반역자 등 다른 세계가 전달될 수 있는 초월적인 매개자들이다. 이 전시는 꼭 누군가의 방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감각하지 못한 관점, 주변부의 목소리, 혹은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전시는 마치 오래된 항해 기록이나 전승된 설화처럼, 산과 바다를 건너온 ‘낯선 존재들’이 도착하는 순간의 긴장과 변화의 결을 섬세하게 펼쳐 보였다. 그들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우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낯선 행색과 말투 그리고 너무나 이상해서 공포스럽기까지 한 ‘타인’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낯선 ‘타인’은 행상이나 밀수업자, 도굴꾼, 스파이처럼 위협적인 존재의 옷을 동시에 입는다. 이름 모를 산의 깊은 정글에서 온 비인간적 존재, 바다의 군도적 지식을 몸에 지닌 항해사, 아니면 해적처럼 타인의 세계를 흔들어놓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이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착들’을 사유하는 자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낯선 존재들의 이미지에 오래 매혹됐다. 미술계에서 작가로 그리고 미술관에서 오랫동안 큐레이터와 기획자로 일하면서, 전시가 관람객에게 일으키는 효과가 종종 ‘친숙함’이 아니라 ‘균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주 보아 왔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늘 조금은 낯선 장소였다. 익숙한 세계와는 다른 규칙, 다른 시간성이 작동하는 곳. 관람객은 그곳에서 종종 이정표를 잃고 표류하거나 공포에 놀라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낯섦의 순간, 인간은 잠시 자신이 아는 세계에서 밀려난 듯한 경험을 한다. 사유의 지도에 빈칸이 생기고, 그 틈으로 새로운 것이 스며든다. 내가 보았던 많은 동시대 미술 작품은 바로 이 틈, 즉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우리 감각을 다시 구성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영토에 도착한 이들은 누구인가? 아시안아트비엔날레는 ‘낯선 이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역하러 온 행상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국경을 넘는 스파이처럼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천천히 세계의 기원을 파고드는 도굴꾼 같기도 하고, 잊힌 해안선의 지식을 품고 배를 모는 오래된 선원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은 산과 바다, 두 세계의 경계를 넘어온 존재들이다. 산은 언제나 침입자를 시험하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산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비인간적 존재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깊은 정글, 습한 공기, 수천 년 동안 보존된 생태적 리듬, 상상 너머의 ‘어둠’이 존재하는 세계. 이 세계에서 온 낯선 존재는 인간의 지식 범주를 벗어난 생명적 감각을 몸에 지니고 있다. 반면 바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흔든다. 바다는 경계가 사라지는 공간이며, 섬과 섬이 그물처럼 연결된 ‘군도적(archipelagic) 지식의 세계’를 가진다. 오래된 항해사, 해상 무역자, 해적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난다. 그들의 지식은 국가나 제국의 언어가 아니라 물결의 리듬과 바람의 방향, 섬의 고유한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산과 바다에서 오는 ‘낯선 이들’은 늘 이동하는 존재, 정착하지 않는 존재다. 이들 모두는 예술가로 상징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예술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경계의 존재, 즉 문명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 제도와 주변부를 오가는 존재의 은유다. 동시대 예술은 바로 이 경계적 존재들의 언어를 포착하는 데서 출발한다. 낯선 이들이 가져온 것들을 통해서 생겨나는 감각의 변화, 산과 바다 너머 세계의 사물과 지식들은 우리 세계의 것들로 설명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2019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 포스터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동안 나는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겪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 ‘판단’이 아니라 ‘멈춤’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이해하려는 시도를 잠시 접고, 예기치 않은 감각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순간. 바로 그 멈춤 안에서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특히 나는 장애예술 정책과 접근성 문제를 다루면서 ‘미술관에 도착할 수 있는 존재’의 범주가 실제로 얼마나 협소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전시장의 문턱이 너무 높았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정보의 양과 방식이 감각 체계와 맞지 않았다. 접근성을 고민한다는 것은 단순히 편의 제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존재들이 전시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두는 일이었다.
이 점에서 동시대 미술은 이미 접근성의 핵심적인 감수성을 내장하고 있다. 주변부의 언어, 침묵의 역사, 비주류적 신체, 비인간적 자연의 목소리, 경계에 선 존재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동시대 예술의 본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동시대 예술은 인간 중심의 서사를 해체하며 ‘세계의 다중적 존재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다중성은 관람객에게 미묘한 감각의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는 예술이 주는 낯섦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도록 초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낯섦이 누구에게도 배제의 기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접근성과 포용성은 단순한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사유적 기반과 긴밀하게 연결된 감각적 실천이다. 동시대 예술의 장소는 결국 또 하나의 ‘도착의 장소’다. 산과 바다에서 온 이들,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들, 그리고 아직 언어를 부여받지 못한 감각과 이야기들이 함께 어울리는 장소. 나는 그곳에서 관람객이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세계를 다시 재구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훈 지휘자 소개
글. 백기영
前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백기영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쿤스트아카데미에서 영상미디어를 전공하였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과 북서울운영부장을 지냈으며,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와 경기도미술관에서 학예팀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