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지역을 중심으로 시각예술의 ‘문화민주주의’를 몸소 실천 중인 학예사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족히 20년은 넘어 보이는 그녀의 험난한 예술 여정이 인상 깊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모 학예사의 대형 전시 홍보 세미나에서의 ‘라깡’에 의한 ‘라깡’의 현대미술 사조(?) 피력에 대해 그녀는 퍽 분개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대미술이 어렵기만 한 필자에게 도대체 라깡이 뭔데? 하는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고 천천히 20세기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라깡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의 <웹진 뵈뵈아트> 독자들에게 현대미술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어려운 정신분석가 라깡의 세계를 머리 뜯으며 이해하고 현대미술과 라깡의 연결고리를 전달하고픈 일종의 사명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먼저 <라깡으로 미술작품 읽기> 쳇 지피티와 함께 전해본다.
1.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때 우리는 흔히 “무엇을 표현했을까?”를 묻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Jacques Lacan)은 작품을 이해하려는 시도보다 작품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주목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히 ‘내가 보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관람자를 되돌아보는 시선의 장(場)입니다.
예컨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속 인물들의 시선은 관객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들을 ‘관찰’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선에 ‘붙잡힌’ 듯한 경험을 합니다. 라깡은 이를 ‘응시(le regard)’라 불렀습니다. 미술 감상의 순간, 작품은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됩니다.
2. 결핍과 욕망의 흔적
라깡의 사유에서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작품 속에서도 이 빈자리는 자주 드러납니다.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에서 관객은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간극을 목격합니다. 그림 속 파이프는 실제 파이프가 아니며, 그 차이에서 생겨나는 불편함이 바로 결핍의 자리입니다. 미술은 종종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남깁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작품은 완전한 해답을 주지 않지만, 질문을 일으키며 우리 욕망의 구조를 비추어 줍니다.
3. 감상의 새로운 태도
라깡으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작품을 단순히 설명하려 하기보다, 작품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에 주목하는 태도입니다. “왜 이 그림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까?”, “왜 나는 이 색채에 유난히 끌릴까?”와 같은 질문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무의식의 언어일 수 있습니다.
뒤샹의 <샘>을 떠올려 봅시다. 단순한 소변기를 전시장에 놓았을 뿐인데, 우리는 ‘왜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정의뿐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과 욕망까지 성찰하게 됩니다.
4. 미술관에서의 작은 실천
라깡적 감상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전시장에서 작품 앞에 섰을 때, ‘알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작품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느껴보면 됩니다. 설명보다 체험, 이해보다 응시가 먼저입니다. 미술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라깡의 시선을 빌리면, 미술관은 작가의 세계를 보는 공간을 넘어, 나의 무의식과 만나는 자리로 바뀝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롭고 깊게 예술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라깡은 프로이트계라고 할 수 있다. 핵심 세 개념은 거울단계라 불리는 ‘상상계(Imaginary)’ : 즉 보이는 ‘나’의 동일시와 환상의 세계와 ‘상징계(Symbolic)’ : 라깡이 매우 중요시 여기는 욕망과 결핍이 언어·법·사회질서 차원에서 존재하는 세계, ‘실재계(Real)’ : 언어나 상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억압되거나 불가능해 보이지만 진실인 세계를 말한다. 한마디로 힘들게 정리해 보자면 인간이란 ‘<언어>등 규범, 욕망의 본질인 <타자의 욕망> 안에서 분열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게 뭔 소리야? 할 수 있지만 결국은 인간이 그만큼 보이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의식 안에 (트라우마 등의 영향 받은) 진짜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립한 사람인 것이다. 각종 플랫폼과 전시에서 작가 노트 등으로 <예술가의 언어>를 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필자에게 매우 정반대 생각을 전해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결국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는 감상의 방법이 다양한 것이지, 각자가 어떤 방법으로 개별 작품마다 재미있있고 의미 있는 감상을 하느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방점은 현대미술이 갖는 매력과 좋은 시각 예술가의 언어가 우리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의 가치일 테니^^ 짧게나마 라깡을 소개해 보았다. 라깡의 생각이 현대미술 감상에 도움이 되셨기를 바란다.